2024. 10. 30. (수) 19:30
아카데미 열정과 나눔
<RE&NEW> 프로젝트 "공존과 조화 2"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공연이 이런 감동이 있어야지!
모든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을 향한 박수 소리까지 사그라진 후 공연장을 나설 때 들렸던 한 관객의 감상평이었다. 퇴장하는 관객들의 수많은 소리 중 저 한 문장의 감상이 인상이 깊은 것은 나 또한 비슷한 감상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혹은 관현악 연주를 듣는다고 하면 대부분 고전음악이나 낭만주의 음악을 떠올릴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들추어봐도 누군가가 클래식 연주를 듣는다고 하면, 베토벤이나 말러와 같은 서양 음악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이번 공연에 큰 기대를 갖고 방문하지는 않았었다. 물론 공연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기대보다는 연주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하지만 공연을 관람한 후 내 생각은 이번 공연의 대주제처럼 다시, 그리고 새롭게 정리되었다.
한국의, 그리고 아시아의 작곡가들과 함께 꾸려진 이번 공연은 네 개의 곡이 큰 줄기를 이어갔다. 공연의 시작을 연 유도원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Concerto for Violin and String Orchestra)는 칸딘스키의 점으로 대표되는 추상적 이미지 요소들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점들의 자유분방함과 그 속에 우연적인 조화의 순간을 표현하는 듯한 이 곡은 하나의 곡 자체로는 언뜻 받아들이기에 애매모호 했지만, 이어지는 김대성 작곡가의 ’서라벌‘과 후술할 두 곡과 함께 음악과 이미지적 상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전체 프로그램의 훌륭한 초안이었다.
김대성 작곡가의 ’서라벌‘은 12현 가야금과 장구가 함께하는 협주곡으로 세 번째 곡인 ’오래된 미래‘와 함께 이번 공연의 <공존과 조화>라는 테마를 대표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악기와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그 자체로 동서양의 공존과 한국에서의 양악의 수입 시기를 떠올렸을 때 신구의 조화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두 곡 중 먼저 선보인 ’서라벌‘은 가야금과 장구, 그리고 관현악이 주고받기도 하고 함께 음악을 구성하는 모습에서 흐르는 강물과 같은 이미지의 인상을 받았다. 서로 다른 강줄기가 하류에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흘러가다가 바다에서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듯한 음악의 흐름이 음악에서의 공존과 조화라는 것이 과연 이것이겠구나 싶었다.
이어지는 김준호 작곡가의 대금협주곡 ’오래된 미래’ 또한 비슷한 인상을 남겼는데, 작곡가의 말을 빌려보자면 주축이 되는 대금산조 자체에 대한 (생략은 있을지언정) 변화는 가하지 않았지만, 그 주변을 둘러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 장소의 과거부터 현재로의 변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 곡의 경우에는 곡뿐만이 아니라 연주자들에게서도 공연의 테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곡의 모티브이자 주가 되는 대금산조의 창시자 박종기 선생의 손자와 증손자가 협연자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공존과 조화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곡은 과연 하이라이트로, 중국 현대음악작곡가 탄둔의 영화 ‘와호장룡’ 음악에 바탕을 둔 첼로 협주곡(Crouching Tiger Concerto for Cello , Percussion and Orchestra)이었다. 영화음악에 바탕을 둔 만큼 각 장의 주제를 영화처럼 상상하게 하는 멜로디와 그 사이에서 열정적으로 이어지는 퍼커션과 특히, 첼로의 카덴차는 말을 잃고 곡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음악적 바탕이 되는 영화가 무협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아시아적 색이 짙은 음악 속에서도 개별적인 소주제가 드러나는 것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훌륭한 음악과 함께, 연주가 끝난 후에서 열기가 식지 못한 것은 임재성 첼리스트의 열정적인 연주였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퍼커션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첼로 연주와 특히 카덴차는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색의 곡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과 조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여들어 전해 준 이번 프로그램은 클래식과 국악기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을 달리하고 그 조화가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공존의 길이 얼마나 무수한지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첫 곡이 끌어내 준 음악의 시각적 감상경험은 앞으로의 관람에 있어 유의미한 영향으로 내 안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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