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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모순된 공간 속 작은방-청공축제 연극 <작은방>

post/2024 ARKO 공연예술 히치하이커

by Lea K 2024. 10. 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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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4. (목) 19:00
문화예술굼터 뽱
청공축제 공식참가작 연극 <작은방>
민송아트홀 2관

 
혜화역 1번출구에 위치한 민송아트홀은 낯선 공간은 아니다. 작년에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참여작을 보러 오기도 했고, 종종 챙겨보는 몇 극단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하는 소극장이다. 객석 사이가 매우 좁아 오랜시간 공연을 관람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무대와 거리감이 적이 객석과 무대의 공기가 순식간에 공유되기도 한다.


자주나 흔하게는 아니지만, 종종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극을 관람하곤 한다. 단순하게 어떠한 대단한 의미를 떠나, 잠시 어릴 적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치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직 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관람하게 된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이하 ‘청공축제’)는 이보다 직접적으로 청소년과 소통하며 완성해가는 청소년극을 만나볼 수 있었다.

2024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

 
한 칸의 작은 방에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옷장에 숨어들며 서로에게 의지하던 희라와 희숙. 두 자매가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전달되지 못한 사정과 각자가 간직한 외로움을 모두 지켜본 객석은 공연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눈물을 닦기 위해 휴지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위에서 흔들리는 따뜻한 조명과 25일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와 상반된 차갑고 텅 빈 방, 그리고 그 방의 바닥을 채운 귀여운 잡동사니 그림은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채 지나간 성탄절처럼 잡히지 않는 것들뿐이다. 안전한 집이 아닌 폭력의 집이라는 모순된 공간 속에서 두 자매 또한 어긋난 관계를 보여준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욕하기 위해 아버지의 욕설을 따라 하는 동생과 그런 동생을 나무라며 손을 드는 언니의 모습, 어린 시절 떠나려는 언니와 붙잡던 동생과는 반대로 다시 만난 후 변명과 같은 말로 붙잡으려는 언니와 머무르고 싶지 않은 동생의 모습이 그렇다.
 

연극 &lt;작은방&gt;

 
이들의 어긋남이 비단 자매 사이, 또는 그 가족 안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작은방을 벗어나고 싶은 만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가정폭력이 가정 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나간 사회 속에서도 그림자처럼 뻗쳐있음을 엿볼 수 있다. 희라는 보다 먼저 집을 떠났지만, 여전히 머무는 공간은 사회 속 작은방이다. 여전히 벗어날 수 없고, 약속을 지킬 수도 없으며 폭력 아래 놓여 있다. 희숙은 스스로 그 공간을 깨고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작은 방은 견고하다. 희라의 이야기를 들어줄 공간, 과거를 드러낼 자신의 공간은 여전히 좁다. 이 두 자매의 어린 시절 작은방이 이 둘을 계속 그 안에 붙잡아 놓듯, 그들의 엇갈린 이야기는 관객 또한 자신의 기억 속 작은방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도란 조성윤

 
무대와 이야기가 만들어준 이 공감의 방 속에서 나는 수많은 질문을 계속 떠올린다.

희라는 왜 아버지의 폭력을 이해하고 싶어할까
희숙이 혼자 집에서 견뎌내야 했던 것이 희라의 잘못이 되는 걸까
이들의 상처는 결국 개인의 상처로 남아야만 하나

공연을 보다 보면, 어느 한 공연에 대한 감상은 무대 위 배우의 연기나 연출, 또는 무대 소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곤 한다. 무대의 맞은편을 채우고 앉은 관객 사이에 공유되는 공기가 그 공연의 무게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공기가 항상 나의 감각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기에, 반대로 상반된 공기 아래에서 산만한 관람으로 끝나기도 한다.
<작은방> 에 대한 나의 감상은 두 자매를 향한(또는 어쩌면 각자의 작은방을 향한) 눈물 젖은 공기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으로 아쉬운 불편함이다. 어쩌면 희숙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변명하려다 아버지까지 이해해보려 하는 희라의 말이 희숙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됨을, 떠나간 희라를 같은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투영하며 결국 희라에게 던져지는 모든 희숙의 비난을 놓치고 그저 연민이나 공감의 눈물로 지켜만 본다면 우리는 자매의 작은 방을 열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며 아이들이 작은방에 갇혀 있다며 슬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모순된 불편함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작품에 대해 짧게 찾아봤을 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이 작품이 2013년에  초연했다는 점이다. 작품은 때로 시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시간의 틈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번 공연에서 느낀 아쉬움과 불편함은 어쩌면 시간이 주는 모순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희라와 희숙 자매의 방을 엿볼 기회가 생긴다면 시간이 만들어낸 틈도 건너와 열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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