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필자의 개인적 견해 500%.
[2019.12.28 15:00]
[2020.01.02 20:00]
연극 수정의 밤
극단 여행자
19.12.27~20.01.05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CAST. 김은희 전중용 이윤재 이종윤 남승혜 김상보 전수지 김효영
시놉시스
1962년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이 그어지던 두만강 근처 조선족 마을. 그 곳에 탈북자들 밀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함오일의 골동품 가게가 있다. 이곳은 북한을 탈출해 태국 등으로 밀입국 하려는 사람들의 은신처이고 함오일과 그의 아들 함구제는 그들에게 돈을 받고 가게에 숨겼다가 이동시켜주는 인간 밀수꾼이다. 최성락, 고은마 부부 또한 이 가게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뒷돈을 받으며 지금까지 이 가게 일을 눈을 감아 주었던 중국 공안, 장상은 그 간 금액보다 더 터무니없는 돈을 더 높여 요구하기 시작하고 함오일은 최성락이 들고 온 돈을 탐내기 시작하는데..
0. 경계.
경계는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차도와 보도를 나누는 경계, 행정구역의 경계, 국가간의 경계 등 찾으려면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퍼스널 스페이스 또한 암묵적으로 인지하는 사람 사이의 경계다. 그렇다면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내 안에 존재하는 경계, 그것은 무엇인가. 내 생각의 경계, 마음의 경계, 있는 듯 없는 듯 한 이 경계를 나는 어떻게 넘어다니며 살고 있는가.
1. 함오일의 경계
나는 중국인이야! 세금도 중국에 내고 도둑이 들어와도 공안이 잡아주는데!
라디오에서 변계협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오일은 역정을 낸다. 중국의 땅을 왜 나누어주느냐고. 이건 영혼을 나누는 일이라고. 무덤덤한 자청이나 구제등과 달리 오일은 이 문제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한다. 오일에게 변계협약은 왜 영혼을 가르는 일이 되었는가.
오일의 아버지는 조선 이야기를 그리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자신을 조선사람이라 믿던 아버지와 달리 함오일은 본인을 중국인이라 정의내린다. 그는 이 극의 등장하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경계 그 자체인 인물이다. 두 나라의 경계에서 아버지의 고향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아래 돈을 벌어 중국에서 살아가는 경계의 인물. 있는듯 없는듯 하던 국경선과 변계협약은 마치 오일을 나타내는 듯 하다. 희미하게 존재하는 경계를 뭉개어 살던 오일에게 변계협약은 자기자신을 반반씩 정의내리는 듯이 보였던 걸까.
극 초반 오일은 애매한 사람이다. 라화연의 말대로 그저 돈만 밝히는 쓰레기 같다가도 구제의 말처럼 겉으로만 그런 사람인듯도 하다. 오일에 대한 두사람의 시선은 왜 엇갈리는 걸까.
사실 오일의 인간밀수는 사기다. 오일은 돈을 받고 그들을 숨겨주지만 자신의 골동품 가게를 떠난 뒤 그들의 생사여부는 관심이 없다. 아니, 자신의 집을 떠난 후 다음 은신처가 없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모른척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 했다 믿는다. 결국 다 쓰레기라는 라화연의 말처럼 오일의 집은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골동품가게가 아닌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희망을 버리고 가는 쓰레기더미다. 그들의 발걸음이 빛 한줄기 없는 어둠 속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던 함오일이 어둠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가 애써 모른척하던 경계가 드러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경계 너머로 가지 않기 위해 오일은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로 한다. 결국 아들에게 실상을 들키게 되기 전까지. 최성락-고은마 가 자신에게 속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전까지.
2. 라화연의 경계
정 붙이면 고향이고 떠나면 타향이지. 나는 고향 없어요.
라화연은 본래 장상과 공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청과 더불어 누구보다 그들의 일을 끝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자청이 은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 화연은 자청에게 궁금한 것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뭐 그리 궁금한게 많으냐고. 화연은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관심을 갖지않고 그래서 궁금한 것도 없이 모른척하며. 그래서 극 초반 오일에게 구제가 왜 오지않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묻는 모습이 낯설다. 화연의 첫질문은 구제가 올 때가 지났다는 것. 자청이 은마에게 이것저것 물을 때 타박하던 그는 곧 은마와 서로 질문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질문을 통해 생긴다. 질문을 통해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게되며 그렇게 머릿속에 들어온 사람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라화연의 새로운 고향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일끝나면 신발 한 짝 들고나오는 본래의 자신처럼 오래된 타향을 떠나 새로운 고향에 정착하려 한다.
3. 함구제의 경계
안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함구제는 재미있는 인물이다. 탈북자의 도주를 돈을 받고 도와주면서 정의를 찾는 인물. 자신의 아버지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자 화를 내고 반발하는 인물. 절대 그들을 버리고 가지 말라는 자청의 말에 그럴 일 없다고 말하는 구제는 집에 돌아와 장상에게 위협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가족의 생존과 자신 안의 정의. 구제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혼자 떠나기로 한 최성락에게 구제는 안된다며 혼잣말을 한다. 무엇이 안되는 것일까. 고은마 혼자 다시 돌아가는 길이 험해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또는 뒤에 하는 말처럼 부부니까, 부부는 헤어지면 안되니까 하는 말일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 둘을 다 넘겨야하는데 사람이 한명으로 줄어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최성락에게 그냥 고은마와 같이 돌아가는 건 어떠냐고 넌지시 묻는 것은 구제의 남은 정의일까.
4. 오자청의 경계
자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건 좋은 일일 거에요.
개인적으로 극중 오자청은 가장 인간미 있는 캐릭터이다. 스쳐가는 인연에도 관계를 만드는 사람.
오일과 구제가 싸우고 난 후 자청은 구제에게 싸웠느냐 묻는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며. 정말 자청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까? 구제에게 절대 은마와 성락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는 모습은 오일을 이해하기에 모른척하는 듯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어 부러 구제에게 여러번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더욱 구제가 인간밀수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듯이.
장상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장상이 원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적당히 대꾸하는 자청의 모습은 경계를 서성이는 사람같다. 자청의 경계는 공장취직을 위한 추천서 때문에 장상을 찾아갔을 때 두드러진다. 그렇게 자청을 마주하는 장상에 라화연이 말한다.
'마지막이라고 했잖아. 내가 끝이라고 했잖아!'
5. 고은마와 최성락의 경계
같이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 최선생님이 왜요?
도망자 신세의 최성락은 고은마의 남편인 서치상의 이름을 빌려 함께 도망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 또한 경계 위에 존재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두사람의 관계도 경계 위를 서성인다. 하지만 최성락의 정보가 공안에 들어가 있고 이후의 계획들이 모호해질 수록 최성락은 그 경계를 넘어서려 한다. 결국 그가 고은마에게 강릉이 아닌 제 3국으로 떠나자 말할 때 고은마는 경계를 확실히 하기로 한다. 고은마가 애써 무시하고 모른척하던 한마디.
'최선생님이 왜요? 왜 제 남편이 아니라 최선생님이요?'
6. 수정의 밤
극 중에서 인물들은 자기 자신에, 또는 서로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수많은 경계들을 가지고 있다. 최성락과 고은마가 찾아와 머무는 그 하룻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오던 경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은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한다. 함오일은 라지두이를 외치는 방문객을 맞고 나서 인간밀수를 그만 둘까 하지만 결국 그는 계속 모른척하기를 택한다.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빨리 지우고 그들과의 관계를 잊고 모른척 하기. 하지만 함오일의 골동품가게가 쓰레기들로만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자청과 라화연 때문이다. 경계는 많은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경계는 분쟁의 중심지가 되고 욕심의 시작점이 되며 물러설 길 없는 벼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청의 말처럼 때로는 내가 어디까지 나가야 하는지, 어디까지 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의 선을 넘지 않도록. 오래된 타향을 버릴 수 있게 된 라화연처럼. 공장추천서를 두고 온 오자청처럼. 그래서 함구제가 과연 돌아올지, 함오일에 구제는 오는거라고 말해도 불안하지 않는 이유는 경계를 바라볼 줄 아는 그 둘이 있기에 구제 또한 그 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극에 가장 궁금한 점은 왜 제목이 수정의 밤인가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왜 독일의 크리스탈 나흐트 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는지... 사실 아직도 연결성은 잘 모르겠다. 관대를 했어야 했다... 인터뷰 봤는데도 모르겠다. ㅋㅋ... 수정의 밤이라는 제목 자체에 의미부여는 할 수 있지만 그 크리스탈 나흐트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어서 계속 그쪽으로 연결지으려 하다보니 이게 안된다. 다음번에 다시와서 보게 되면 그 땐 그 의미를 알 수 있을지.. 막공을 봤어야 했는데 전날 대방어에 소주가 너무 잘들어가는 바람에 물음표만 띄우고 보내버렸다. 사실 자첫했을 때는 크리스탈 나흐트 생각하면서 보느라 하나도 이해를 못해서 애매모호했다. 고민하다가 한번 더 보라는 무의식의 삐삐에 자둘한건데.. 자둘하며 드는 생각들에 너무 재밌게 보게돼서 급하게 더 잡은 표였으면서 대방어와 소주의 궁합이 너무 좋아 다음 날 관극이 있다는 걸 잊고 달려버렸다. 역시 사람은 금주를 해야...
++ 후기쓰는 거 계속 미뤘더니 한달이 다 됐다. 극보면서 생각하던거 다 까먹었다. 그래서 후기가 엉망이다. 앞으로 꼬박꼬박 후기쓰는 김레아가 되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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