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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The Big Meal

post/후기

by Lea K 2019. 12. 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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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9 20:00]

[2019.12.25 15:00]

연극 The Big Meal

극단 다이얼로거

2019.12.19~2019.12.29
여행자 극장
김기준 안꽃님 김진곤 김양지 최서진 박새라 표예리 고민희 김다연


*스포일러 포함. 필자의 개인적 견해 500%. 


이건 니콜의 이야기이다. 삶에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 그 중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여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샘과의 만남은 갑작스러웠고 흐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볍게 만나겠다는 다짐 아래 단편적 기억들 속에서 어느 새 기대를 하는 가볍지 않은 마음의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헤어졌고 시간이 지나고 또 다시 갑작스럽게 둘은 마주한다. 

다시 시작된 인연은 전처럼 가볍지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랬던가. 꼴불견이던 행동은 우리 사이에서 로맨틱해졌고 시끄럽고 징그러운 아이들은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됐다. 정말로 미친짓에 미치지 않은 나는 어느 새 동참하고 있다. 하나뿐이던 테이블은 새로운 가족이 되며 하나씩 늘어나고 그 속에서 인연들은 계속해서 찾아왔다가 또 어느 날 갑작스레 떠나버리기도 한다. 나만을 향하던 내 시선은 가끔은 나보다 샘을, 로비를, 그리고 메디를 향한다. 가끔은 너무나 밉지만 언제나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바라보던 시선은 가장 행복하던 순간만을 담아 다시 나에게로 와 가장 행복한 마지막 식사를 완성한다.



1. 메디와 재클린

극 내내 나에게 메디는 그저 너무 아픈 캐릭터이다. 그리고 샘과 니콜에게도 그럴 것이다. 대놓고 차별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미묘한 차별 아래에 메디는 누구에게 선물을 받았을까. "할아버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 말은 메디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요구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벽이 되어버렸다. 정말로 진심은 아니었는데...
한 두번도 아닌 일들, 그 빼앗기는 선물들 하나하나에 메디의 상처가 쌓여간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에도 메디는 보이지 않는다. 메디는 식탁의 어느 한쪽이 흔들릴 때에서야 나타난다.
니콜이 재클린에게 선물을 줄 때, 니콜은 어린시절의 메디를 떠올리며 재키에게 선물을 건네지 않았을까. 하지만 메디에게는 여전히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선물일 뿐이다. 받지못해서 메디는 어린 새미에게 제대로 주지 못한다. 제대로 주는 법을 알지 못한다. 메디는 끝까지 왜 나한테는 선물을 주지 않느냐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메디가 선물을 요구한건 어린 시절 처음으로 자신에게는 선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한번 뿐이었다. 

어린 새미는 말한다. 세상을 바꾼다고 말을 할 시간에 한번이라도 행동을 하라고.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전해 줄 수 없다. 샘과 니콜에게 메디는 흉터다. 샘이 재키를 보며 메디를 찾을 때, 어렸을 적 재클린처럼 그저 궁금증 많고 해맑던 메디의 모습 대신 외롭게 가버린 메디의 마지막. 앨리스가 말했듯 샘은 재키를 통해 메디에게 행복하게 잘 지내라는 편지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극 안에서 재클린은 메디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다면 재클린처럼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린 시절 똑같이 사랑스럽고 사랑받는 메디와 재클린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자랐다. 



2. 로버트와 샘, 그리고 로비

이놈의 삼대는 대체 변하지를 않는다. 솔직히 뿅망치 들고다니면서 멍청한짓 할때마다 한대씩 쳐주고 싶다. 그래도 로버트에서 샘으로 샘에서 로비로 이들도 변하기는 한다. 손톱의 때만큼 정도. 그러한 미묘한 변화들이 쌓여 다음 세대를, 그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나가겠지. 그래도 니콜-메디-재클린의 변화와 너무 차이나지 않냐. 

 

 

 

3. 웨이터는 어디에 있어?

 

나중에 재클린과 매튜가 니콜을 찾아온다. 니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웨이터를 찾는 재클린에게 매튜는 이렇게 말한다.

 

"웨이터는 숨어있어."

"웨이터가 왜 숨어있을까?"

"엄마를 놀래켜 주려고. 웨이터는 지금 찬장에 숨어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을거야. 그러다가 엄마가 배가 많이 고파지면 나타나는 거지."

"왜 그때까지 숨어있을까?"

"그러면 음식을 많이 시킬테니까."

"얼마나 많이 시키는데?"

"음.. 전부 다?"

"전부 다? 그러면 너무 많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야."

"그래..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닐 수 있겠다."

 

(위의 대사는 실제 대사가 아님. 기억 안남. 대충 느낌대로 맞춘거임.)

 

한번 쯤 인생에서 웨이터가 찾아와 메뉴를 제시해 주면 어떨까. 이건 기쁠 것이고 저건 슬플 수 있다는 코멘트와 함께 때론 추천도 해주고. 하지만 인생에서 우리는 그저 저것이 무엇이겠거니 선택하고 맛본다. 때로는 너무나 행복할 수도 때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일수도 있다. 절대 저것만큼은 손대지 않아야지 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손이 가 선택하기도 하고 매번 하던 선택을 바꾸기도 한다. 웨이터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우리는 그 모든 순간들을 마주한다. 너무 많지만 짧았던 순간들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식사를 골라 마지막을 꾸며본다. 샘을 처음 만났을 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바라볼 때, 다시 그 아이들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까지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꾸민 마지막 식사.

가장 행복한 그 때는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4. 그러니까 이건 니콜의 이야기.

 

극의 전반적인 흐름은 샘의 집을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볼지 모른다. 샘-로비-재클린의 흐름은 그렇게 보여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항상 바라보고 있는건 결국 니콜이다. 니콜의 시선은 항상 니콜만 바라보진 않는다. 인연을 엮어갈 수록 나 자신보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그리고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을 품고.

 

 

 

 

5. 나에게는 쉽지 않은.

 

사실 극을 보고있으면 초반에는 특히 맘속으로 열심히 니콜한테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헤어져!', '결혼은 미친짓이라며!', '애는 안낳고 살겠다며!' 등등... 니콜도 본인의 이야기를 멀리서 바라봤다면 똑같이 외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니콜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게 원래 나에게는 쉽지가 않다. 그저 이야기를 건네듣고 남을 바라볼때는 너무나 명확해보이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도 그게 내 일이라면 확실한 답은 없고 명확한 상황은 없다. 명확히 답을 내려야지 하다가도 갑작스러운 상황은 그 답에 세모표시를 하게 하고 깔끔해 보이는 상황들은 그 중심에서는 전혀 깔끔해 보일 수 없다.  계획형 도시처럼 잘 짜여진 길이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정말 남에게는 쉽지만 나에게는 쉽지가 않다. 가끔은 결국 이것도 괜찮지 않은가 합리화 하기도 하고 가만히 참고 넘어가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있다. 고민을 토로하고 명확한 답을 들어도 그대로 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 그래도 나의 선택은 무척이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다. 옆에서 아무리 뭐라해도 내 딴에는 가장 신중한 결정이다. 비록 이 선택이 실패해서 그날의 식사를 모두 망쳐버릴지라도 분명 다음에는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것이라 믿으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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