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의 뒤틀림을 감각하는 방법
어릴 때,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나는 이것 저것 찔끔찔끔 해보지만 한가지를 꾸준히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 크면 이 모든 일들을 다 잘하게 될 줄 알았던 듯 싶다. 당시 어른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 리스트에 있던 것 중 하나가 소설책을 내는 것이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꿈이었다. 나름 글을 잘쓴다고 믿었던 어린시절이 지나고 학교공부에 치이고 책은 점점 안읽으면서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억 저편에 잊혀졌던 것이 친구가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내면서 오랜만에 생각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변화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느꼈다. 아직, 여전히 20대, 그러나 그 한손으로도 셀 수 있는 시간동안에도 나의 생각과, 행동과,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흔히 말하는 반항적이고 뭐든 시도해보는, 활달한 그런 20대 초반의 나는 여전히 반골기질을 없애진 못했지만 훨신 조용히, 그저 흘러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됐다. 이런 변화는 때로 내가 성장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만 동시에 타협하지 않을 거라고 외치던 용감한 아이가 이미 사라져버렸나 하는 아쉬움과 서러움도 안겨준다. '풍선의 뒤틀림을 감각하는 방법' 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자 단편의 제목은 이러한 순간을 그대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닐까.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로 채워넣었던 시간들이 어느 새, 순식간에 그 의지들을 바깥으로 흘려보내고 나 자신이 점점 쪼그라드는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 지금 나는 풍선의 뒤틀림을 감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풍선은 그렇게 쪼그라들어서 세상에 남아있다. 계속 커져만 가는 풍선은 결국 터져서 사라져버린다. 세상에 중심으로 서 있지 않을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결코 작지 않다. 또 다른 단편 '멈춘 시계가 하루에 두 번 맞추는 시각에 대하여' 처럼 더 이상 내 의지를 관철하여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그 아래 스며있는 것들은 언젠가 한번은 나를 그 중심에 세울 것이다. 변화는 존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공연을 볼때 항상 재밌는 건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한 배우가 보여주는 특유의 감정과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아주 선한 인물을 연기할 때도, 정반대의 악을 연기할 때도 이상하게 같은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그가 보는 세상이 연기에 배어나온다.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작가를 떠올리고,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생각한다. 이번에는 작가가 지인이라서인지 소설 속 작은 것들에서도 떠오르는 것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이렇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는 곳곳에서 등장한다. 숨길 수 없는 흔적들은 남아서 '나'에게 다시 영향을 주고 추억하게 한다. 이 감상 또한 지금의 나를 담고 미래의 나에게 어떤 추억과 기분을 안겨줄지 궁금하다. 감상적인 어린시절을 유쾌하게 바라볼지, 더 달라진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낄지, 또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할지. 계획대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미래지만, 어찌됐건 내가 직접 만들어갈 미래에 나는 여기에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