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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지나 봄 오듯 (歲寒平安)

picture/전시

by Lea K 2021. 4. 18.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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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歳寒 평안平安

20.11.24 ~ 21.04.04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한창 극장용으로 관극 다닐 때, 지나다니면서 기획전시실의 전시포스터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당시의 기획전시를 몇번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1446 말고는 용극장에서 공연을 보질 않으니 최근 국중박을 방문할 일도, 어떤 기획전시가 있는지를 볼 기회도 없었다. 이번 기획전은 단순하게 요즘 공연도 잘 못보고 그나마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전시를 예매해뒀다가 생각나면 다녀오고 하다보니 인터파크에서 전시파트를 구경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도 그렇고 공연을 고를 때도 그런데, 제목이 마음에 들면 60퍼센트는 먹고 들어가는 사람이다보니 이번 기획전도 국중박에서 진행된다는 것도 물론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지만 전시제목 역시 마음을 끌었기 때문에 바로 예매를 했다. (겸사겸사 친구들도 꼬셔서 데려갔다. 덕분에 이런저런 재밌는 사진도 찍었다.)

 

이번 전시는 기탁받아 소유하고 있던 세한도를 완전히 기증받으며 기획된 전시이다. 편하려고 혼자 세한평안이라고 부르고 다니지만 이건 약간 부제고 진짜 전시 제목은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이다. 워낙에 살아남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삶의 흐름이 보이는 제목이 당연히 매력적일 수 밖에.

 

공연을 볼 때도 그렇고,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굳이 자세히 찾아보거나 미리 알아보지 않고 일단 보고나는 이상한 습관이 생겨서 이번 전시도 크게 알아보고, 기억하고 이러질 않아서 세한도 기증기념 전시인 것도, 미디어 전시인 것도 가서 알았다. 가끔은 좀 알아보고 가야겠다...

 

1. 歳寒 -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

미디어 전시임을 드러내듯, 전시의 시작과 함께 겨울의 쓸쓸함을 전해주는 영상을 만나게 됐다. 두개의 스크린으로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주는데 영상의 길이가 꽤 있어서 두번보기는 힘들겠더라. 영상이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아서 더욱 쓸쓸함이 다가왔다. 문득 지난번 뮤지엄 오브 컬러즈에서 느낀 색에 대한 감상이 떠오른다. 겨울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채색의 계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색이 주는 계절의 의미.

 

 추사 김정희 '세한도'

앞선 영상을 보고나서 세한도를 보니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은 한채뿐인 집이다. 영상과 함께 쓸쓸함을 안고 들어와 자연스레 쓸쓸함을 찾게됐다. 이때에 옆에 있는 것은 쭉 뻗은 나무들이다.  정신없이 북적일 때 우리는 곁에 있는 것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곁에 남아 있는 것들, 이전에도 지금도 머물러 있는 것들에 눈길이 간다. 

 

세한도는 문인화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문인들이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세한도는 그림 한 장이 아니라 두루마리인데, 그 긴 두루마리에 여러사람의 첨언이 적혀있었다. 이는 한 사람, 한 시대나 한 장소에서 적힌 것이 아닌 세한도가 거쳐간 자리에 따라서 여러 사람의 평이 적혀있다.

(세한도에 적힌 감상문  museum.go.kr/uploadfile/ecms/media/2020/11/29A36C35-C2AE-E404-83D1-CF22E94975FE.pdf

이 중 관심이 가는 것은 단연 뒤에 적힌 독립운동가들의 말이다. 세한도가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싸움 사이에서 유배당했을 때 그려진 것을 생각하면 서양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결국 일본에 무릎꿇어야 했을 때 독립운동가들이 다시 일본에서 돌아온 세한도를 보며, 또 찬겨울 곁을 지키는 그림 속 송백을 보며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가 생생하게 와닿는다. 재미있는 것은 두루마리 속의 공백이다. 이는 처음 우선 선생이 중국으로 가져가 제찬을 받은 이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일본에 건너갔다 오기까지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제주도 유배처럼 타의로 떠나있는 시간, 찾지 않는 공허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공백을 띄우고 다시 곧은 의지가 두루마리를 채웠다. 이 점이 더욱 세한도의 의미를 높여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적힌 정인보 선생의 글 이후에도 두루마리에는 아직 빈공간이 있었다. 관람할 때 이를 각자 채워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번에 마티스 컷아웃 전시를 봤을 때 처럼 세한도 엽서에 글을 써보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2. 平安 - 어느 봄날의 기억

세한파트와 평안파트는 아예공간이 분리 돼 있다. 세한에선 조금 묵직하고, 차분하며 곧게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평안은 시작부터 재미나고 즐거운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조명이 밝아지면서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됐는데, 평안파트는 김홍도의 풍속화 '평안감사향연도'를 바탕으로 한 미디어 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입장하자마자 볼 수 있는 것은 줄을 지어 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평안감사의 부임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관객 또한 이들을 따라 잔치를 즐기러 들어간다. 아무래도 앞선 세한파트와 달리 밝고 즐거운 느낌에 자연스레 포토스팟마냥 이런저런 사진을 여럿 찍게 됐는데, 운이 좋게도 나와 친구들이 구경하는 동안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피해를 덜 끼친것 같다.

 

아무래도 잔치이다 보니까 춤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정지된 그림속에서 즐기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일종의 축하공연들을 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 돼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스크린이 나뉘어 있어 마치 병풍처럼 보이기도 해서 움직이는 병풍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어지는 전시관에서 세장의 향연도를 미디어로 크게, 그리고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이 때 여기서 본 공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부벽루와 연광정 사진에서 찾았던 것 같다.)

 

'달밤의 뱃놀이' 중 한 부분이다. 사람이 자기 관심있는 것만 본다고 배에서 술마시며 노는 사람을 보니 절로 눈길이 가고 부러워서 서둘러 찍었다. 

악기로 추정되는데, 사실 처음에는 바로 위와 마찬가지로 술병채 술마시는 사람인줄 알고 재밌다고 찍었는데 알고보니 아니었다. 공직자는 일을 해야지.

달밤의 뱃놀이의 상황을 미디어로 구현한 공간이다. 미디어 전시의 장점은 역시 이런 구현에 있는 것 같다. 그 때의 분위기와 감정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점이 미디어전시의 재미가 아닐까.

미디어로만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실제로 감상할 수 있는데 깔끔한 선과 색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달밤의 뱃놀이 같은 경우에는 (구경하다가 깜빡했는지 사진이 없지만) 상단부의 깃발 같은 것들이 반짝이는 금박같은 것으로 돼 있어 직접 감상할 때 단연 눈길을 끌었던 점이다. 평양감사의 부임잔치를 그린 것으로 생각해봤을 때 풍요로운 시절의 한 조각을 붙여둔 듯이 보였다.

 

전시의 마무리에 이 향연도에 표현된 전통적 감사의 상징들을 볼 수 있었는데 덕분에 모르고 지나갈 정보들을 추가적으로 구경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에 좀더 주목해서 즐길 수 있었다. 즐겁기도 즐겁지만 정말 많이 배운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관람을 하던 당일은 3월 31일이고, 이후에 (이 글을 쓰기 전에) 미켈란젤로 특별전도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둘다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전시이다 보니 공통점과 차이점을 느끼며 봤던 것같다. 미디어는 상황이나 스토리적인 부분을 좀더 구현시키고, 가까이 느낄 수 있지만 작품 그 자체의 아우라는 많이 반감되는 듯하다. 세한평안의 경우 실제 작품을 함께 보았지만 미켈란젤로 특별전의 경우 어려움이 있어 더욱 스토리적인 면에 집중에서 관람한 듯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작품을 좀 더 다양하고, 어쩌면 더 가깝게 볼 수 있어졌지만 존재 자체의 힘은 역시 직접 마주할 때 오는게 아닐까.

 

야경이 너무 이쁜 국중박

김정희와 김홍도.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왜 이 두 작품이 같이 전시가 된걸까. 

 

전시를 볼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100년이 넘게, 어떻게 보면 200년 가까이 차이가 나고 두 전시관의 분위기도, 보여주는 것도 너무나 달라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좋았던 그 시절의 추억과 지나고 나서 깨닫는 소중함, 이 두가지는 모두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고독을 버티고 주변의 고마움을 깨달은 사람은 분명 이 다음에 오는 잔치를 더욱 기쁘고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창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가 고립되는 시기이다. 모여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새삼스레 곁에 비워진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 그 소중함을 간직하고 살아가면 다시 즐거운 한때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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